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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원의 역사

 

마산만을 향해 넓게 펼쳐진 해안평야의 언덕진 대지에는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도처에 산재, 마치 선사시대 유적의 전시장 같은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유적인 반계동 유적, 외동 지석묘, 성산패총 하층유구 등 청동기시대의 주거지와 지석묘 유적을 통해 이 시기에 사람이 살았음이 증명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외동 성산패총은 서기전 3세기 경부터 형성된 유적으로 야철지(冶鐵地)를 포함한 성곽의 유구와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이미 농경문화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여 그 사회가 성읍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창원시 서상동 남산 유적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환호는 현재까지 발굴된 것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청동기 시대 환호로서 이 시기 이 지방의 청동기 문화를 가름할 수 있게 하는 유적이 되고 있다.

삼한시대 이 고장은 『삼국사기』 내해왕(奈解王 209) 조와 『삼국사기』 물계자(勿稽子) 전에 나오는 포상팔국 중 골포국(骨浦國)이었으나, 뒤에 가야 세력권에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시대에 이 지방은 굴자군(屈自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의안군(義安郡)으로 개칭되었고 마산지방의 골포현은 합포현으로 개칭되어 의안군에 영속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의안군과 합포현이 금주(金州)에 소속되었다. 그러다가 뒤에 각각 감무가 파견되었다. 충렬왕 때 고려와 몽고 연합군의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원정 중에 이 지방이 병참기지가 되어 1280년(충렬왕 6) 정동행중서성(征東行中書省)이 합포에 설치되었다. 1282년 두 차례의 원정에 이바지한 공이 크다 하여 의안군은 의창현(義昌縣)으로, 합포는 회원현(會原縣)으로 개칭되어 각각 현령이 파견되었다. 고려 말 왜구의 노략이 심해지면서 이 지방은 그 침입로가 되어 피해가 심해졌다.

1408년(태종 8) 의창(義昌)의 ‘昌’과 회원(會原)의 ‘原’을 합해 창원(昌原)이라 이름하고 창원부(昌原府)로 승격되었다. 1415년에는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로 승격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창원성은 진주로 향하는 왜군 주력부대에 포위되어 3일 만에 함락되었으나, 이 곳 군민이 합심, 성을 사수하였다. 전란 중 적에게 항복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으므로 1601년 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603년 이 곳에 있던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을 진주로 옮겼다. 1661년(현종 2) 문묘의 전패(殿牌)를 투실한 불상사로 현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다가 1670년 대도호부로 환원되었다. 1895년에 진주부 창원군으로, 1896년에 경상남도 창원군으로 개편되었다. 1899년 마산포가 개항되었고, 창원감리서(昌原監理署)가 개설되어 군수가 감리를 서리하였다.

1906년진양군 양전면을 편입하여 창원부로 승격하였다. 1908년 웅천군, 진해군과 김해군 대산면, 칠원군 구산면을 편입하였다. 1905년 러일전쟁 중 일본이 군용철도로 마산선(마산∼삼랑진)을 부설했고 1926년 진해선(진해∼창원)을 개통하였다. 1910년이래 일본은 웅천군과 거제군 일부 지역에 그들의 군항을 설치할 목적으로 도시계획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그 후 규모를 축소하여 1916년 지금의 진해시에 해군요항부(海軍要港府)를 설치함으로써 진해현은 자기 고을의 이름을 웅천현 옥포에 이양하게 되고 삼진(즉 진동·진북·진전)면으로 개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원군으로 개칭하고 외내면을 마산부에 편입하였다. 1931년에는 진해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5년 시로 승격됨으로써 창원군이 분리되었다. 1973년 창원공업기지 조성에 따라 창원면·웅남면·상남면 일원과 내서면·구산면 일부를 마산시로, 웅천면 일원을 진해시로 붙여 줌으로써 창원군은 10개 면으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1976년 이 지역을 관할하는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0년 창원지구출장소 관할구역에 마산시 의창동을 편입하면서 창원공업기지가 창원시로 승격되었으며, 이때 창원군은 옛 이름인 의창군으로 개칭되었다. 1983년 경상남도 도청이 이전, 기계공업과 행정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창원군의 북면·동면·대산면과 창원시가 통합되었다. 1997년 대동제 시행으로 27개 읍면동이 15개 읍면동으로 개편되었다. 2010년 옛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가 합쳐져 통합 창원시가 되었다.

2. 창원의 자연

 

지형은 대체로 경상남도 남부 지역을 특징짓는 해안산맥이 고성쪽으로부터 마산·함안을 거쳐 본 시역의 중부와 남부지역을 지나 동쪽으로 달려 김해시 지역까지 연속되고 있다. 서북쪽으로는 천주산(656m), 동쪽으로는 봉림산(567m), 남동쪽으로는 불모산(802m), 남쪽으로는 각각 장복산(566m)과 팔용산(328m)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북부는 대체로 저평한 평야지대와 저습지대로 되어 있는데, 이는 북부의 시계를 동류하고 있는 낙동강의 퇴적작용에 의해 하안평야가 북면·동면·대산면지구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시의 지세는 북반부의 저지대, 중앙의 저평지, 그리고 중앙 동부와 남부의 산악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서부지구는 북쪽은 대체로 표고 200m이하의 저평지가 전개되어 함안군과 연결이 자유로운 편이다. 동부와 남부는 산악의 준령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김해시와의 시계를 형성하고 있고 서남쪽의 일부는 내륙 깊숙히 들어온 마산만의 만구에 해당된다.

대표적 산지는 중앙부에 정병산(精兵山, 567m)·봉림산(鳳林山, 290m)·구룡산(九龍山, 434m), 서쪽에 천주산(天柱山, 656m), 시가지의 동쪽에 비음산(飛陰山)·대암산(大巖山, 669m)·불모산(佛母山, 802m)·웅산(熊山, 703m)·태산(台山, 703m), 남쪽에 장복산(長福山, 566m)·산성산(山城山, 400m) 등이 솟아 있다. 이 외에도 백월산(白月山, 400m)·춘산(春山, 298m) 등이 있다.

하천으로는 천주산과 정병산에서 각각 발원한 내동천(5.20㎞)과 창원천(7.5㎞), 그리고 불모산과 장복산에서 흘러 내린 남천(9.5㎞)이 시가지 중심을 서류하여 각각 마산만으로 유입한다. 시가지 내에는 그 밖에도 가음정천(加音丁川)·완암천(完巖川) 등이 남천에 합류된다.

시의 북부에는 낙동강의 본류가 인접한 의령군의 지정부근에서 남강과 합수하여 유로를 동쪽으로 돌려 본 시 관내의 북부를 동류하는 관계로 북부지역에 상류쪽의 퇴적물을 운반, 충적평야를 형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저습지를 형성하였다.

창원시는 북반구 중위도와 유라시아대륙의 동안에 위치하므로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대륙지방보다 비교적 한서의 차가 작고 계절풍의 영향을 많아 온대기후지역에 해당한다. 그러나 난대성해안기후의 특색이 더 강하다. 연평균기온 13.8℃, 1월 평균기온 0.1℃, 8월 평균기온 25.5℃이며, 연강수량은 1,572㎜이다.

지질은 대체로 중생대 경상계 지층으로 덮여 있다. 산지는 화강암으로 중앙의 분지는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졌다. 식생은 온대남동부형의 유형에 속하는 편백·해송·리기다소나무·오동나무 등이 자란다.

3. 창원의 산업 및 교통

 

이 지역은 울산, 부산, 마산, 사천을 연결하는 동남임해 중화학공업지역내의 대규모 기계공업단지로서 마산 자유무역지역과 함께 경남 중부지역 산업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시는 도시계획구역면적이 292.685㎦(44.08%), 농경지가 77.82㎦(26.59%), 공장용지가 14.23㎦(4.86%), 대지가 17.53㎦(5.99%), 기타 54.10㎦(18.48%)로 구성되어 있다. 소계동에서 남산동으로 연결된 13.5km의 직선 도로인 창원대로를 중심으로 남쪽은 공업단지, 북쪽은 신도시 지역으로 크게 구분되어 있다.

생산녹지 및 자연녹지를 포함하여 녹지지역으로 구분되는 잔여지역은 대부분이 농경지 및 임야 등 농업활동과 공원용지로 이용되는 토지에 속하며 소위 개발제한지역으로 불리기도 한다. 총 경지면적은 64.75㎢이며, 이 중 논이 38.77㎢, 밭이 25.98㎢로서 각각의 점유비는 논이 60%, 밭이 40%이다. 따라서 논이 밭보다 약 1.5배를 초과하여 이용되고 있는데, 시의 북쪽지점에서 낙동강 및 남강의 본류가 합수되어 보다 큰 물줄기를 이루면서 흐르기 때문에 자연히 촌락지역의 관계용수이용이 용이하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감자 등과 채소작물이 경작되고 있다. 총 사업체 수는 3만 2,515개이고 종업원 수는 23만 2,723명이다. 제1차 산업에 속하는 농림수산업의 경우 4개 업소에 97명이 고용되어 있다. 제2차 산업에 속한 광공업을 보면, 광업은 4개 업소에 75명이 고용되어 있다. 그런데 41개의 대소 광구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고령토 외에는 다른 광물의 채광이 전무한 상태이다. 이는 경상남도 전체에 대하여 각각 7.8%, 20.7%의 비중을 창원시가 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사업체의 점유비가 고용율의 3배에 상당함은 창원시에서 활동 중인 공장기업의 규모가 비교적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제3차 산업은 판매업과 서비스업이 건설업·금융업 등과 균형을 이루고 있다. 시장은 30개의 상설시장, 1개의 백화점 및 2개의 정기시장이 분포되어 있다.

교통은 시의 북서부에는 남해고속도로가 지난다. 도로율은 18.3%로 전국 최고 수준이다. 가로망은 북서·남동 방향의 직선상 간선 도로인 창원대로를 경계로 북쪽의 행정·업무·상업·교육·주거지구와 남쪽의 공업 단지 산업 지구로 분리되어 있다. 이 창원대로는 창원터널을 통하여 김해(장유)와 연결된다.

또 경남도청에서 창원시청 앞 광장을 연결하는 폭 70m, 길이 2.8㎞의 중앙로는 경남의 수부도시이자 한국 최대의 기계공업 도시의 위용을 자랑하면서, 창원대로와 함께 사통팔달의 직각형 가로망이 형성하는 축이 되고 있다. 또한, 철도의 진해선이 시의 중앙을 지나 진해로 연결되어 있다.

4. 창원의 관광산업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설계에 따라 건설된 인공산업도시로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찾는 산업관광명소이다. 기계공업단지를 비롯, 주거 및 상업·업무·교육지역이 완전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너비 40m의 간선도를 중심으로 격자상으로 벋은 가로망이 자동차, 인도는 물론 자전거 전용로까지 구분하여 게획도시의 면모를 보여준다.

마산자유수출지역에서 창원기계공단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웅장하게 서있는 정밀공업진흥탑은 관광객의 발길을 멎게 하는 관광명소이다. 이곳으로부터 곧게 뻗은 가로변에 서 있는 크고 작은 기계계열의 각종 공장은 한국공업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기계공단의 배후에 있는 중앙동의 중앙로타리는 방사상으로 뻗은 가로와 주변의 잘 정돈된 정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관광 휴양도시인 진해와 인접해 있어 관광객이 많다. 풍치가 빼어난 산과 강은 물론, 국내 굴지의 온천과 철새도래지 등 관광명소가 많아 공휴일에는 탐승유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북면 신촌리에 있는 마금산온천은 식염천으로 망간 라듐 유산칼리 탄산칼슘 등의 성분이 풍부하여 신경통과 피부질환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이 온천은 경치가 수려한 낙동강변에 자리잡고 있어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동읍의 주남저수지는 경상남도 최대의 철새도래지이다. 동읍 신방리에는 천연기념물인 엄나무군이 있고 북면 외감리의 달천구천은 경치가 아름답다.

창원 예술제는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고취시키고 이 지역의 고유한 문화예술을 보여주고자 하는 취지에서 열리는 순수예술제이다.

야철축제는 삼한시대부터 변한지역으로 찬란한 철기문화를 꽃피운 역사적인 전통을 바탕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기계공단으로 발돋움한 역사의 맥을 이어 옛 선인들의 지혜와 은덕을 제례형식으로 재현하는 창원시의 최대의 축제로 1991년부터 매년 개최하였으며 1997년부터는 시민의 날 주행사로 개최하고 있다.

진례산성 진달래축제는 비음산 진례산성에 대한 역사발굴을 시민의 축제로 승화시킨 것으로 1994년부터 매년 성내에 자생하는 진달래군의 개화기에 맞춰 개최하고 있다.

사림동의 경남도립미술관은 2004년에 개관하였으며 4개의 대형 전시실, 다목적홀, 영상전시실, 그리고 옥외조각전시장을 갖추고 있다. 역시 사림동에 위치한 창원대학교박물관은 마산, 창원을 포함한 경남지역의 유물을 중심으로 주로 선사 및 고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서상동의 이원수문학관은 2003년에 개관하였으며 동요작가 이원수 선생의 단행본과 전집 등 총 2,800여권의 도서 및 편지류 등을 전시하고 있다. 2000년 개관한 성산아트홀은 품격 높은 문화예술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이 고장 문화 예술의 메카로서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이 외에 1997년에 개관한 늘푸른전당, 용지 야외무대 등 다양한 문화예술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두대동의 창원종합운동장은 1993년에 준공되었으며 주요 국내외 체육행사가 이루어지는 창원시의 대표적인 채육시설이다. 2004년에는 전국 최우수체육시설로 선정되었다. 역시 두대동에 있는 창원실내수영장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의 수영경기장소로서 활용되었으며 1997년에 개관하였다. 1992년과 1997년에 각각 개관한 상남동의 시민생활체육관과 심동동의 늘푸른전당은 시민들의 체력단련을 위한 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외에 토월동에 창원시립테니스장이 있다.

5. 창원의 유물 유직

 

불교문화재로는 봉림동의 봉림사지(鳳林寺址, 경상남도 기념물 제127호)·봉림사지삼층석탑(鳳林寺址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 대방동의 불곡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佛谷寺石造毘盧舍那佛坐像, 보물 제436호), 삼정자동마애불좌상(三亭子洞磨崖佛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은 육각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천선동의 성주사에 성주사대웅전(聖住寺大雄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4호)·성주사삼층석탑(聖住寺 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호)은 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며, 보타전석조관세음보살상(寶陀殿石造觀世音菩薩像)과 더불어 고려시대의 수작이다. 또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 보물 제362호)과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보물 제363호)는 서울의 경복궁내로 이전되어 있다. 소답동의 용화전석조여래좌상(龍華殿石造如來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43호), 봉림동 석조마애보살입상, 불모산동 석불좌상 등도 고려의 불상이다.

유교문화재로는 소답동의 창원향교와 창원향교대성전(昌原鄕校大成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동읍 석산리에 도봉서원이 있다. 이 밖에도 소답동의 사미루·김씨고가, 북면 내곡리의 최윤덕장군생가지(崔潤德將軍生家址, 경상남도 기념물 제145호)가 있다. 대산리에 정렬공최윤덕묘(경상남도 기념물 제 121호), 지개리의 어사옥비(御使玉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66호), 대산면 가술리에 주남돌다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5호), 내리동의 관술정(觀術亭,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4호), 동읍 석산리에 동산정 등이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으로 외동지석묘(外洞支石墓, 경상남도 기념물 제5호)는 창원 남중학교 내에 위치하는 기반식지석묘이다. 이 밖에도 동읍의 용잠리지석묘군과 덕천리유적에서는 지석묘 3기, 석곽묘 12기, 석개 토광묘 5기와 지석묘의 묘역시설로 보이는 석축시설이 있다. 이외에도 남산리지석묘군, 봉산리지석묘군, 신방리지석묘, 곡목지석묘군, 봉곡리 양교지석묘, 금산리지석묘 등이 있다. 그리고 남산패총과 소답동패총은 마산 성산패총과 같은 시대의 것이며, 창원외동성산패총(사적 240호), 창원 내동패총(경상남도 기념물 제44호)이 있다. 창원 외동의 가음정동고분군(경상남도 기념물 제126호)과 도계동고분군이 있다.

문창제(文昌祭)놀이는 조선 병자호란 때 순절한 충신 황시헌 공을 기리는 민속놀이로 그의 제삿날 창원부사가 관속들과 성묘 제례하고 관기들로 하여금 추모의 춤을 추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 황공의 위패를 세우고 제물을 차려 부사와 관속들이 제사를 올리는 제1과장, 기녀들이 소복차림에 한삼을 끼고 추도무를 추며 황공의 넋을 위로하는 제2과장, 황공이 순절할 때의 상황을 무언극으로 재현하는 제3과장, 마을사람들이 황공의 명복을 빌며 풍물을 울리는 판굿인 제4과장으로 이루어진다.

산성으로는 토월동의 창원진례산성(昌原進禮山城, 경상남도 기념물 제128호), 성산산성은 석성으로 성벽조사시 패총의 상부에 세워졌고, 토기 뚜껑·항아리·개원통보가 출토되었으므로 패총의 폐기시점에서 7세기까지 존속했던 성으로 보인다. 창원읍성은 조선 명종때 쌓았으며 원래의 둘레는 800m로 회양루·망미루·진남루·공화루 등의 사대문이 있었다.

대발동의 불곡사일주문(佛谷寺 一柱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3호)은 사찰의 일주문이 아니라 창원객사의 삼문을 1822년(순조 22)에 웅천향교로 옮겨 사용하다가 1943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동읍에는 신방리의 음나무군(천연기념물 제164호)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창원시(昌原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