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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산 지명과 유래

 `양산(梁山)`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게 된 것은 조선 태종 13년(서기 1413년)이었다. 태종은 전국 단위의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양산군(梁山郡)으로 명명하였다. 지난 2013년에는 지명 탄생 600주년 행사를 거창하게 치르며 다양한 기념사업을 실시한 바 있었다.

양산(梁山)은 경상남도 남동부에 위치하는 지역으로 665년(신라 문무왕 5년) 이곳에 삽량주(?良州)를 설치하였다. 이후 757년(경덕왕 16년)에 구주(九州)의 하나인 양주(良州)로 개편하였다.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양주(梁州)로 개칭했으며, 성종 때에는 방어사를 두었다. 1018년(현종 9)에 양주군으로 고쳤고, 충렬왕 때 잠시 밀성군에 폐합되었다가 곧 환원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양산군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의춘(宜春), 순정(順正) 등의 별호가 있었다. 1895년(고종 32년)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양산군이 되었고, 고종 건양 원년(서기1896년) 경상도를 경상남북도로 분리하면서 경상남도에 배속되었다. 광무10년(서기1906년) 좌이면, 대상면, 대화면 3개 면을 부산부와 김해군에 이속, 울산군 외남면, 웅상면 2개 면을 양산군에 편입하였다.

융희 4년(서기1910년) 외남면을 울산군으로 환속하였다. 일제시대인 1914년에 부산 좌이면 공창 및 북면 녹동ㆍ송정 등 3동과 언양 조일리가 양산군에 통합되었다. 1973년에 동래군 기장면ㆍ일광면ㆍ장안면ㆍ서생면ㆍ정관면ㆍ철마면 등 6개 면이 양산군에 통합되었다.

1979년에는 양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0년 기장면이 읍으로 승격, 1983년 서생면이 울주군에 이속되었다. 1985년 장안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6년 11월 동부출장소를 설치(양산군 조례 제980호)하여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 등 5개 읍면을 관할하였다.
1986년 12월 양산읍 남부동 일부, 동면 석산리, 금산리 일부를 물금면으로 편입하였다(대통령령 제12007호). 1988년 5월 양산읍 남부동, 중부동, 북부동을 남부리, 중부리, 북부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양산군 조례 제1063호). 1988년 12월 양산읍 북부리 일부(2,272㎡)를 중부리에 편입하였다(양산군 조례 제 1099호). 1991년 11월 웅상면이 웅상읍으로 승격되었다(양산군 조례 제1288호). 1995년 기장읍, 장안읍 2개읍과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 3개면이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이속되었다(법률 제4802호). 1996년에는 양산군이 시로 승격되었다(법률 제4994호). 양산읍이 중앙동, 삼성동, 강서동으로 분동되었으며(법률 제4994호), 물금면이 물금읍으로 승격되었다(법률 제 4994호). 1998년 웅상읍 덕계출장소가 설치되었다(양산시 조례 제108호). 2004년 1월 웅상민원출장소가 설치되었다(양산시 조례 제 340호). 2007년 4월 1일 웅상출장소를 설치하면서 웅상읍이 서창동, 소주동, 평산동, 덕계동으로 분동되었다(양산시 조례 제571호). 2010년 2월 중앙동이 중앙동, 양주동으로 분동되었다.

이상에서 살펴보면 양산은 삼국시대 이래로 행정구역의 명칭과 구역이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행정구역 변동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1995년 양산군에 속해 있던 기장읍, 장안읍 2개읍과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 3개면이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편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 시절로 외적으로는 민주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단행하여 양산에 큰 손실을 초래하였다.

현재까지도 양산시를 부산광역시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며, 시민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양산시는 자체적으로 재정자립도가 높기에 경남도에서 양산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한 양산시민들도 교육적인 이유로 부산광역시 편입을 원하는 여론이 일부 있기는 하나 대세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양산에는 천년고찰 통도사와 17개 부속암자가 있고, 많은 공단과 물금 신도시가 있고, 청정 자연이 살아 있으며, 양산팔경을 포함한 명산과 계곡이 있으므로 미래의 발전 잠재력이 아주 높다. 부산에 포함될 경우 양산은 공원묘지, 쓰레기 매립장 등 혐오시설만 들어오고 양산의 재정수입은 부산의 못사는 지역으로 빠져나갈 우려가 높다. 양산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2. 양산의 역사내용

 

선사시대 인간주거의 유력한 증거가 되는 여러 패총과 유적들이 여러 곳에 산재하고 있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터전을 잡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양산은 지리적으로 신라 세력의 중심지였던 경주와 금관가야의 중심이었던 김해의 사이에 위치하고 또, 낙동강 하구 물금에서 언양에 이르는 긴 골짜기는 낙동강과 경주를 연결하는 긴 통로이며, 『삼국사기』에도 신라와 가야가 전투를 벌인 기사가 여러 차례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 두 세력이 충돌하다 일찍부터 신라의 세력권으로 편입된 지역으로 보인다. 또한, 665년(문무왕 5)에 신라가 상주(上州)·하주(下州)를 개편해 양산지방에 삽량주(揷良州)를 신설한 것으로 보아 삼한시대의 양산은 한반도 남동지역에 존재하고 있던 변진 24국 중에서 불사국(不斯國)과 호로국(戶路國)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가 이 지방에 통도사를 창건했으며, 문무왕이 상기한 대로 상주와 하주를 분할해 삽량주를 신설했고, 687년(신문왕 7)에 성을 쌓았다. 또한, 757년(경덕왕 16)에 주명을 양주(良州)로 고치고 헌양현(巘陽縣)을 영현으로 하였다. 삼국시대 이전 유적으로는 양산패총, 하북면 신평 청동기유적, 다방동 패총, 하북면 순지리, 웅상 지역과 명곡리 취락지와 부부총 유적이 있다.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또 995년 7월에 전국을 10도로 나누었는데, 이때 양주군은 영동도(嶺東道) 경주목의 소속이었다. 940년(태조 23)에 양주(良州)는 양주(梁州)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에 방어사를 두고 기장현과 헌양현을 울주로 이속하고, 동평현(東平縣)을 영현으로 삼았다. 그러나, 원지배하에 들어와 몽고의 간섭으로 관제를 정비하면서 양주는 밀성군(密城郡)에 병합되었다가, 1304년(충렬왕 30)에 다시 복구되었다. 속현으로는 동평현, 기장현이 있었으며, 별호로는 선춘(宣春), 순정(順正) 등의 명칭이 있었다.

양주는 1413년에 지방행정 개편 때에 양산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405년에 ,동래현으로 이속했다가 1409년에 동래현으로 부터 양주에 속하게 했던 동평현을 1428년(세종 10)에 다시 동래현으로 이속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 때의 호구수는 양산군이 425호 937명, 동평현이 108호 342명, 기장현이 174호 397명이었다.

1592년(선조 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1599년에 끝이 났으나, 이로 인해 군이 황폐해져 동래부에 폐합되었다가 1603년에 복구되었으며, 기장현 역시 1599년동래부에 폐합되었다가 1617년(광해군 9) 현을 복구하였다. 1771년(영조 47) 양산군의 호구수는 2,079호 1만 2178명이었고 1759년 기장현의 호구수는 2,687호 1만 630명이었다.

1895년(고종 32)년에 기장현을 군으로 개편하고, 1897년 전국을 13도로 하고 양산군을 양산면·동면·물금면·원동면·상북면·하북면·구포면·대저면의 8개면으로 하였다. 1906년에는 외남면과 웅상면을 울주군에서 편입하고 구포면을 동래군으로, 대저면을 김해군으로 이관하였으며, 1910년외남면을 다시 울주군으로 이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기장군을 동래군으로 통합하였다. 1919년 양산의 3·1운동은 엄주태(嚴柱泰) 등 청년층이 주도해 3월 27일 궐기했으며 계속해 일본상품불매·상해임정 자금지원운동 등으로 번져 나갔다.

광복 이후 경제개발 정책의 와중에서 급속히 발전한 양산군은 1970년 군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동래군을 흡수하였다. 1974년 10월 26일에는 원동면 이천출장소를 설치했으며, 1979년 4월 7일양산면이 1980년 12월 1일기장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하였다.

또한 1983년 2월 15일 서생면으로 울주군으로 이속하고, 1985년 10월 1일 장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6년 11월 1일 동부출장소를 설치해 기장면·장안면·일광면·정관면·철마면을 관할하게 하고, 1991년 11월 20일 웅상면을 읍으로 승격, 1995년 3월 1일 동부 등 5개 읍·면이 부산광역시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양산군이 양산시로 승격되고 양산읍이 중앙동, 삼성동, 강서동으로 분동하였다. 물금면은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 4월 1일 덕계출장소가, 2004년 1월 3일 웅상민원출장소가 각각 설치되었다. 2007년 4월 웅상읍이 서창동, 소주동, 평산동, 덕계동으로 분동되었다.

3. 양산 관광

 

양산지방은 수려한 산천과 고찰이 많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양산의 영산인 취서산의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통도사는 합천의 해인사, 전라남도 순천의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 중의 하나로 대웅전을 비롯해 보물급의 수많은 불교문화재가 산재하는 국내 굴지의 관광명소이다. 통도사에 이르는 약 1.5㎞의 노송 숲은 터널을 이루어 새소리, 맑은 물소리와 더불어 선경을 방불하게 하는 가경으로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끓이지 않는다.

천성산은 산천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솟아 있어 제2의 금강산이라고 하는데, 계곡에는 통도사의 말사이자 여승들의 수도장인 내원사가 있어 시인 묵객과 탐승객이 줄지어 찾는다. 이 곳에서 남서쪽으로 약 4㎞ 떨어진 원효산 계곡의 홍룡폭포도 이 고장이 자랑하는 절경 중의 하나이다.

서창동 삼호리의 서창장은 4·9일, 덕계리의 덕계장은 3·8일에 장이 선다. 그리고 상북면 석계리의 석계장은 장날이 4일과 9일이고, 하북면 순지리의 신평장은 3일과 8일에 장이 선다.

신라 눌지왕 2년(418)부터 경덕왕 16년(757)까지 약 340여 년간 불려온 양산의 옛 이름를 딴 삽량문화제는 이 고장의 뛰어난 문화유산을 이어받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문화예술축제이다. 가야진용신제는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가야진사’의 제례를 바탕으로 형상화한 행사이다. 통도사 개산조 자장율사의 제사일인 음력 9월 9일을 전후하여 열리고는 개산대제는 자장율사에 대한 추모와 통도사 창건을 축하하는 행사로서 개산대제 법요식과 자장율사 가사 친견, 유치원 재롱잔치, 기념 합창제등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린다.

2002년에 준공한 남부동의 양산문화예술회관은 대공연장 및 소공연장과 전시실, 야외공연장, 연습실 등이 있으며 명실공히 양산문화의 대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북면 지산리의 통도사성보박물관은 사찰전래의 문화재를 보존 전시하고 이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통하여 일반 대중의 불교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취지에서 건립되어 1999년에 개관하였다. 국보 1점과 보물 17점을 비롯하여 약 3만여 점의 불교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국내 유일의 불교회화 전문박물관이다.

2008년 현재 종합운동장이 2개, 체육관 1개, 테니스장 3개, 게이트볼장이 1개 있다. 북부동의 양산종합운동장은 주경기장 및 실내체육관과 보조경기장을 갖추고 양산시의 주요 각종 체육경기 및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 고장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이름난 골프장을 갗추고 있다. 36홀의 근대식 국제적인 골프장인 통도컨트리클럽, 27홀로 짜여진 동부산컨트리클럽, 매곡동의 양산에이원(A·one)컨트리클럽 등이 대표적이다.